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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제/books

보호자의 부재, 위태로운 아이들. 단편 소설 Pilgrims와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교하며

 

 

보호자의 부재, 위태로운 아이들 :

단편 소설 Pilgrims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비교하며

 

 

    일본은 서양에서도 재패니메이션, 닌자의 나라 등의 인식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은 일본 만화를 TV에서 방영하기 시작하는 등 미국에 일본 문화가 소개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Julie Orringer의 단편 Pilgrims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쓰여졌는데 그래서인지2001년 개봉한 만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이야기 구조가 상당히 닮아 있다. 예를 들어, 두 작품 모두 초반부와 종반부 목적지에 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시작하며 타를 차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주인공과 비교해 Pilgrims에서 주인공의 경험은 상당히 비꼬아져 나타난다. 구조는 비슷하나 분위기는 어둡고 결말은 더욱 어둡다. 마치 전자의 모험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가장 큰 차이로 주인공 소녀들의 부모님의 부재에 의한 주변 상황은 두 작품에서 비교되게 그려지며 판타지인 전자와 비교해 현실적으로 써낸 후자는 실제로 아이들이 방치되었을 경우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사를 가는 도중의 차 안에서 치히로가 부모님에게 학교를 전학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중에 차가 길을 잃어 헤매다 발견한 오래된 전철역에서 부모님은 맛있는 냄새를 맡고 더욱 깊숙히 들어가는데 그 곳은 신들의 접대 장소, 신들의 음식과 신들의 온천이 있는 곳이었다. 모르고 준비돼 있던 음식을 먹은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의 모습으로 변해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치히로에게 꿀꿀거릴 뿐이다. 막막하던 치히로에게 하쿠라는 소년이 다가와 치히로가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낯선 세계에서 치히로의 모험은 시작된다. 이야기의 종반, 무사히 인간으로 돌아온 부모님과 치히로는 차를 타고 돌아가며 하쿠를 생각한다  

 

     ‘Pilgrims 역시 부모님과 남매가 이동중인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마는 암 투병 중에 있으며 화학적 치료로 별 효과를 보지 못해 민간요법, 명상을 통한 치유에 관심을 가지는 집단과 교류를 갖게 된다. 때는 추수감사절이라 부모님이 주인공 Ella와 남동생 Ben을 같이 그 곳에 데리고 가던 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Ella는 그곳의 뒤뜰의 나무집에서 Peter와 만나 아이들을 소개 받는데 하나같이 정상인 아이가 없었다. 모두 말라있었으며 Peter의 여동생 Clarie는 어딘가 음침해 보이고 빨간 물단지를 엄마라 여기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Peter는 후에 Clarie의 빨간물 단지를 나무집에 갖고 올라가 Clarie를 놀리는데 Clarie는 단지를 되찾으려 손을 뻗다가 추락해 죽는다.

 

     두 작품의 분위기는 상반된다. 초반부 차 안 장면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차창 밖에서 쏟아져 오는 햇살과 초록빛 숲의 풍경을 묘사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bgm을 흘려준다. 치히로의 표정엔 이사하는 곳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 섞여있다. 반면, Pilgrims에선 Ella의 불편한 심정이 드러나는데 낯선 이들과의 식사자리에 거부감을 느끼며 차에서부터 계속 삼촌과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렇듯 기대감과 거북함의 상반된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두 작품의 소녀들에게는 같은 또래의 소년이 다가온다. 하쿠와 Peter가 그들이다. 하쿠는 신들의 세계에서 미아가 된 치히로를 전적으로 도와주는 인물이며 어른스럽고 사려 깊다. 한편 Peter는 처음 본 Ella Ben에게 뽁뽁이 활을 겨누며 인질인양 취급하고 나무집 위로 올라가 트램펄린으로 뛰어내리게 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다음엔 누굴 죽일 거야?라며 조금 섬뜩한 모습을 보인다. Peter역시 Clarie를 죽음으로 내모는 인물이며 자신의 잘못을 어른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죽은 Clarie의 사체를 숨기는 등의 잔인성을 보인다. Pilgrims는 아이들만의 모임을 위태롭게 표현하며 하쿠와 같은 대리 보호자 격의 인물은 현실에 없음을 나타낸다.

 

     나무집과 트램펄린은 부모들의 아이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내는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안전장치 없이 높은 위치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둔 것을 아무도 딴지 거는 이 없다. 실제로 Ella는 흔들리던 이이긴 하지만 나무집에서 떨어지는 과정에서 이가 빠지게 된다. 빠진 이를 잃어버려 이빨 요정에게 줄 이가 없음을 걱정하며 Ella는 자신의 일을 부모님에게 전하러 가지만 엄마는 침대에서 콜록대고 있으며 아빠는 그런 엄마를 보며 Ella를 귀찮게 취급한다. 이와 같은 무관심은 Clarie가 추락한 후에 다시 한 번 나타나는데 급하게 Clarie의 죽음을 부모에게 전하러 간 Ella이지만 명상중인 엄마는 Ella의 이야기를 흘려 듣는다. 이렇듯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비극은 점점 커지게 되는데 치히로가 돼지가 되어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된 부모님을 발견하고 모험을 시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이다.

 

     어른들의 무관심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나무집의 아이들은 모두 지나치게 말라있는데 이는 그 집단의 어른들이 채식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장기의 자녀에게까지 채식을 고집시키는 것이다. Clarie는 종종 나무집에서 인질놀이의 일환으로 Peter에게 묶이는지 식사 자리에서 Peter의 아빠는 Clarie가 오늘도 묶였다는 얘기를 듣자 Peter에게 화를 내지만 변명하는 Peter에게 잘못만 추궁할 뿐 이유는 더 묻지 않는다. 작품 전반에 깔린 어른들의 무관심은 아이들의 위태로운 모습에 납득이 가게 해준다

 

     작품 종반, 두 소녀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오르는데 치히로는 신들의 세계를 뒤로한 채 하쿠를 생각하며 독립심과 사랑을 배운 모습을 보이는 반면 Ella는 후에 Clarie의 죽음이 발견될 나무집을 뒤로하며 깊은 트라우마가 새겨져 마음 안주할 곳 없이 속으로 울 뿐이다.  Ben은 옆에서 훌쩍이고 있으며 Ella는 침울하지만 부모님은 자녀들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다. 두 작품은 이렇듯 같은 구조로 상세하게 대비되며 Pilgrims는 낙천적인 전개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여실히 거북함을 드러낸다.

 

     Pilgrims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같은 또래의 주인공, 쓰여진 시기 등 많은 부분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모티브로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끔 했다. 판타지 작품에 영감을 얻어 냉정한 현실을 입혀 재해석 해낸 것이다. 각 작품에서 소녀들은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를 방문하고 경험을 하며 한 단계 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치히로의 경험이 모험에 가깝다면 Ella의 경험은 고행 그 자체이다. 작가는 영화 같은 기적과 선한 인연들이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 생각했던 것이리라. 순수하기에 잔인하다는 말이 있듯 트램펄린으로 뛰어내리기를 시키는 아이들의 모습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어른들의 부재에서 아이들에겐 모험 대신 사고가 일어난다. 항상 관심 속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함을 비극적 결말, 타산지석을 통해 Pilgrims는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