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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제/movies

선이 없는 영화 ‘기생충’의 고정관념 비꼬기. After watching 'parasite'

 

선이 없는 영화 기생충의 고정관념 비꼬기

 

     기생충에서 박 사장은 선을 넘는 사람을 싫어하는 인물이다. 사람에 대한 호감을 표시할 때 선을 넘지 않아서 좋아.’라며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가 마음대로 설정한 자신만의 선이란 것을 남들은 알 길이 없고 다른 사람을 편협한 잣대로 재단할 뿐이다. 박 사장의 은 그렇기에 남과의 상호작용을 극도로 제한한다. 이에 반해 박 사장이 등장하는 기생충영화 그 자체는 극 중 내내, 선을 넘나들고, 허물어 여느 이야기들에서 흔히 정형화된 것들, 캐릭터간의 관계나 캐릭터의 성격, 선과 악, 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약자는 으레 당하는 쪽, 당하는 쪽은 선이라는 논리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기택이네 가족은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의협심이나, 복수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사리사욕을 위해 사기를 치는, 약자이자 악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개는 그런 기택이네에게 당하는 무고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듯하더니 극의 중반부에서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은 문광 역시 박 사장의 주택에 기생하는 기생충이었음이 밝혀진다. 그 사실을 이용해 우위를 점하려던 충숙과 한껏 저자세가 된 문광이지만 기택이네 가족이 가족 사기단임을 알아챈 후에 문광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지며 충숙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한다. 무고한 피해자일 줄만 알았던 문광에 대한 인식이 휙휙 바뀌는 순간이다. 이 영화에 진정 무고하고, 순수한 선이라곤 없다. 그렇기에 온전한 악도 없다. 서로가 서로의 악이 될 뿐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박 사장 또한 냄새에 관한 언급으로 기택이를 자극하는 가해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기택이네 가족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며 능동적이다. 신분을 가장하고 박 사장의 저택에 기생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베테랑 가정주부, 베테랑 운전기사, 실력 있는 과외교사, 전문적인 미술치료사, 그저 그런 인력도 아닌 전문인력 행세가 찰떡이다. 심지어 맡은 바 업무도 잘 해낸다. 기택은 완벽한 코너링을 보여주고, 기정이는 다송이를 예의 바른 아이로 다루며, 기우는 책임감을 다해 다혜를 가르친다. 기우가 후에 병원에서 깨어나 대면한 의사 같지 않은 의사, 형사 같지 않은 형사와는 정확히 대치되는 상황이다. 진짜 같아 보이는 가짜와, 가짜 같아 보이는 진짜, 혹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기택이네 같은 가난한 가정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진 자의 품위를 꾸며낼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기우의 말을 빌리면 기정이는 박 사장의 저택에 어울릴 정도의 부티나는 아우라를 갖고 있다. 한편 영화는 이러한 경계 허물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박 사장 부부의 품위를 떨어트리는 시계꼭지 장면을 넣기도 했다. 

 

     다송이의 생일파티, 오근세의 반격 등 예상 밖의 해프닝이 계속 이어진다. 아마 기택이 박 사장을 찌르는 전개도 관람객의 예상에는 없었을 것이다. 기우의 계획은 애초에 모두 망가졌으며 기우의 망가져버린 계획과 같이 극의 후반부는 예상조차 못할 무질서와 무계획으로 치닫는다. 선을 긋는 것, 계획을 세우는 것 등이 모두 무산하다는 듯이 이 난장판은 이런 영화의 주제를 잘 나타낸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그야말로 어떠한 일도 생길 수 있는 세상이다. 확실한 것은 없다.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고정관념, 선입견 등 선으로 그어질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의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우리의 의식을 한 단계 깨트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