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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제/movies

말레피센트2, 원작에 대한 모욕

말레피센트 2,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

 

말레피센트시리즈는 1959년 디즈니에서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재해석하여 실사화 한 작품이다. 말레피센트의 첫 시리즈에서는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등장하는 악역인 마녀 말레피센트를 타고난 악인이 아니라 본성은 착한 인물로 재설정하였으며, 오로라를 끝까지 음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건 저주에 대해 후회하고 거두어 오로라를 보살피는 대모가 된다는 것이 그 내용으로 하였다. 곧 개봉할 디즈니의 영화 크루엘라역시 장편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했던 여성 빌런 크루엘라를 재조명하는 작품이며 이처럼 여성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재해석하는 것이 요즘의 디즈니의 기조인 것으로 보인다. 말레피센트 1에서 오로라와 말레피센트의 관계가 원작과 달라진 뒤 이어지는 내용은 이러한 디즈니의 경향을 열렬히 반영한 것으로 보이나, 이로 인해 생기는 전개와 개연성의 구멍에는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작품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지고 만다. 여성이 활약하는 장면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단편적인 씬을 위해 기존에 쌓아왔던 설정과 전개는 과감히 무시된다. 이는 말레피센트에서 뿐 아니라 스타워즈와 같은 기존의 프랜차이즈를 흡수한 이후의 디즈니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 글에서는 말레피센트 2의 장면들을 위주로 예시를 들어 설명하겠다.

작품은 여성들간의 대립, 여성들의 활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꽃 알레르기가 있는 잉그리스 여왕, 철이 약점인 말레피센트 두 여성 캐릭터 진영의 전쟁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로 연출이 되며 여성 리더가 이끄는 자연의 진영과 철의 진영의 대립구도는 마치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를 연상시킨다. 잉그리스 여왕의 수행원으로써 전쟁을 거드는 이 역시 여성이며 존 왕과 필립 왕자와 같은 남성 등장인물들은 평화를 외치는 아주 온순한 인물들이다.

주연 여성 캐릭터 중 한명인 오로라 역시 여왕의 직위를 가지고 있고, 영화는 그녀의 활약상 역시 그리고 싶어 하지만 스토리상 그녀가 필요 없음에도 무리하게 그녀를 조명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엉성한 장면들을 연출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존재를 삭제시키는 가루의 위협을 받으며 성당에 갇혀 있던 요정들을 말레피센트의 사역마 디아발이 성당의 문을 부수며 구해낸다. 이후 성당 밖으로 탈출하는 요정들의 대피를 돕는 오로라를 비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을 그리고 싶은 디즈니의 의도만이 읽혀질 뿐, 그녀의 안내는 사실 쓸모없는 것이었다. 성당을 탈출하고 이어지는 것은 전쟁의 한복판이었고, 오로라의 안내가 없어도 나갈 곳은 한 곳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문을 실제 문을 부순 디아발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또 낙하하는 오로라를 말레피센트가 낚아채 땅으로 내려와 서는데, 거대한 불사조 앞에 이는 흙먼지 속에서 천천히 발을 딛고 일어서는 오로라를 왜 웅장하고 비장하게 잡아주는지. 오로라는 그저 높은 곳에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했고, 말레피센트에 의해 구해졌을 뿐이다. 이런 호가호위의 오로라의 모습을 연출은 마치 그녀가 거대한 불사조를 부리는 용맹한 여성인 듯 표현하였다. 맥락에 상관없이 관객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여성 캐릭터의 활약을 위해 기존의 설정은 무시되기도 한다. 숲의 요정들이 성당에 갇혀 가루를 맞으며 죽어갈 때, 파랑 요정은 자신의 몸으로 가루가 나오는 구멍을 막아버린다. 숭고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요술을 부릴 수 있는 인물이다. 닿으면 죽어버리는 가루가 천천히, 전혀 위협적이지 않게 날아든다 해서 벌벌 떨기만 할 정도로 나약한 캐릭터가 아니다. 가루를 발포하고 있는 인간 하나만 처리하면 될 것을 어째서 죽음을 각오한단 말인가.

   저주에 빠져 잠든 미녀에게 진정한 사랑을 담은 키스를 하면 저주가 풀린다는 원작의 설정을 비꼬기 위해 말레피센트 2에서는 존 왕이 잠에 빠지며, 잉그리스 왕비가 그에게 키스를 한다. 남녀가 바뀐 구도가 흥미롭다. 그러나 이 역시 빌런인 잉그리스의 활약을 위해 전 편에서의 설정이 무시된 경우이다. 존 왕이 저주에 걸린 것은 잉그리스 왕비가 물레방아의 바늘로 존 왕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물레방아의 저주는 분명 말레피센트가 오로라에게 한정하여 내렸던 저주였다. 아무나 찌르면 저주에 걸리는 뛰어난 성능의 저주 아이템이 아닌 것이다.

영화에서는 여성의 활약을 위한 장면이 아니어도 전개와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기존 원작의 설정과 스토리의 대부분을 여성 위주로 개편한 것, 앞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핍박 받는 종족, 다크 페이의 배우들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고용한 것 등의 그들이 최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특정 사상은 영화의 모든 단점과 낮은 완성도를 방패 삼기 위해서인 듯 보일 뿐이다. 그마저도 오로라에 대해서는 여성 리더로서의 활약에 대한 고민없이 구색 맞추기에 바빴으며,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매력적이었던 빌런 잉그리스 왕비는 결국 패배한 후 코믹하게 다뤄지는 데에 그치고 만다. 이야기의 완성도로 보나 극명한 권선징악 구도의 결말로 보나 말레피센트 2는 어른이 보기에 적당한 영화가 아니었음에는 분명하다. 화려한 그래픽과 맥락에 맞지 않는 멋진 연출로 아이들의 눈을 현혹시키기에 급급한,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