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학과제/movies

'조조 래빗' - 나치즘을 향한 유쾌한 조롱

 

'조조 래빗' - 나치즘을 향한 유쾌한 조롱

 

영화 ‘조조 래빗’은 나치 사상 선동과 전쟁이 만연했던 세계 2차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하다. 특히 시작이 그렇다. 히틀러에 대해 일제히 경례하는 군중들을 비추며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가 흘러나오고 나치 소년단원들이 전쟁놀이를 하며 서로 치고 받는 장면에서는 톰 웨이츠의 ‘I dont wanna grow up’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마치 나치 사상이 열렬한 팬덤 문화인 듯, 혹은 신나는 놀이 문화인 듯 군중과 소년들의 철없는 맹신을 유쾌하게 비춘다. 그 광기에 편승해 히틀러에 대한 미친 충성심을 보이며 온 거리에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다니는 10살 소년 조조는 상상친구 아돌프를 만들어 곁에 두는데, 그 또한 유쾌하고, 친근하고, 친절하고, 우스꽝스럽다. 경쾌한 음악이 깔리며 아돌프와 조조가 함께 수류탄을 들고 달리는 장면은 지금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사회에 만연하게 선동되던 나치 사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10살 소년의 시선으로 본 당시의 독일이다.

 

이렇듯 발랄하게 시작하는 작품은 내내 10살 소년의 시선을 빌려 유쾌하지만 자세하게, 조목조목 독일의 과오를 하나씩 짚어 나간다. 나치 소년단원들에게 피부는 비늘이고, 뿔과 송곳니, 뱀의 혀를 지니고 있다면서 유태인에 대한 혐오 사상을 심고, 아리안 인종을 찬양하며 아리안 인종 우월주의를 주입시킨다.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올바른 정보가 담긴 책을 불길 속에 던지는 것도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도록 한다. 바보들의 행진이다. I dont wanna grow up’을 부르는 톰 웨이츠의 굵고 심술맞은 목소리가 장면과 완벽히 어울린다.

 

작품은 나치 사상과, 그 신봉자들을 비웃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당시 나치가 선동하고 거부했던 주체들을 작품에서 활약하게 하여 재치있고 더욱 집요하게, 나치즘 그 자체를 조롱한다. 이러한 예시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장면은 캡틴 K와 핀켈이 퀴어하게 리폼한 군복을 입고, 망토를 휘날리며 전장을 누비는 장면일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꼴이지만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그의 동성애 성향을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슬로우 화면으로 연출되는 두 사람의 비장한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경외심이 들고, 애달픈 감정도 느끼게 한다. 총구는 연합군을 향했지만 그들의 행동은 자신들의 동성애에 대한 공표이자 나치에 대한 반란이었다.

 

캡틴 K는 동성애자일 뿐 아니라 반동분자이기도 하다. 조조가 수류탄으로 자폭을 했을 때 ‘His mothers going to kill me.’ 라며 로지와 이미 안면이 있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한데다, 로지가 캡틴 K의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하기도 한다. 그의 임종 직전 조조에게 ‘She was a good person, actual good person.’라며 말한 것은 자신이 나치와 타협하여 이렇게 목숨을 연명한 것과 달리 너의 엄마는 진정 목숨을 걸어 독일의 해방을 위해 힘썼다. 라는 의미이다. 캡틴 K는 그녀의 활동을 도왔거나, 적어도 그녀의 활동을 알면서도 밀고하지 않은 인물인 것이다. 게슈타포가 조조의 집을 방문했을 때 엘사를 두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애초에 게슈타포가 들이닥쳤을 때 마침 캡틴 K의 자전거가 펑크난 것은 우연이 아닌 고의였다. 조조의 집에 발을 들이는 동시에 게슈타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 인사를 건넨 걸 봐서 말이다. 이렇게 극이 진행되며 그의 대한 정보가 드러날 수록 관객의 호감을 쌓아가는 이 매력적인 나치군 대위는 사실 반동분자이자, 나치의 아리아인 인종우월주의에 반하는 동성애자였으니 그가 지휘관으로서 전장을 활보하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나치즘을 격하시키고 망가뜨리는 연출이었다.

 

심지어 영화의 주된 스토리는 열렬한 소년 나치 신봉자가 유태인 소녀와 사랑에 빠져 자신이 믿고 있던 사상을 송두리째 부정하게 되는 내용이다. 나치는 보다 쉬운 선동을 위해 자신들의 인종 자체에 대한 자존감을 높이려 유태인을 희생양 삼아 짓밟았던 것인데, 그러한 선동 사상을 비웃듯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조가 나치 사상을 부정하게 되는 과정은 변화하는 그와 아돌프의 사이를 통해 잘 표현하였다. 조조의 배 속에서 나비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이후 그의 조언자이자 베스트 프렌드였던 아돌프는 점차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나치즘에 대한 그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치즘은 본인과 다를 바 없고, 아름답기까지 한 엘사를 맹목적으로 혐오해야 하는 이질적이고 이상한 사상이었다. 끝내 자신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게 된 조조에게 아돌프는 ‘little heil’을 구걸하는 약하고 비굴한 자로 비춰지고 결국 조조에게 뻥 차여 창문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영화 초반부터 친근하게 표현되어 자칫 히틀러의 미화가 될 수 있었던 부분은 이 장면을 통해 깔끔하게 해결된다. 결국 히틀러는 우스꽝스럽고 비겁한 선동꾼 그 이상이 아니었다.

 

‘조조래빗’은 나치와 유태인 학살, 무거울 법도 한 주제를 만화 같은 연출, 동화 같은 서사로 한층 가볍게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조조의 상상친구 아돌프 역을 감독 본인이 맡은 만큼 장면 구상에 맞게 몸짓과 박자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슬랩스틱을 보여주고, 점차 심각해지는 상황을 다루면서도 중간중간 웃음코드를 넣어 도입부의 신나는 분위기를 종반까지 어느정도 끌고 가며 시종일관 나치에 대한 조롱조로 관객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한다. 엘사의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한 긴박한 상황에서 하일 히틀러링을 5명의 게슈타포와 각각 40번을 반복하는 장면이 대표적으로, 감독은 분명 작품의 분위기를 잃지 않으려 치밀하게 노력했다. 공공의 적이었던 나치즘을 유쾌하게 비난하며 때문에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