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학과제/movies

승리호 비평, 뻔함과 뻔함의 결합. 생소한 이에게는 참신할 수도

승리호 - 뻔함과 뻔함의 결합. 생소한 이에게는 참신할 수도

승리호를 감상하는 내내 ‘어디서 본 거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큰 틀로써 짜여진 이야기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 너무도 많이 봐왔던 것이었고,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나 대화 방식,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 등 세부적인 스토리텔링은 한국 관객들에게 질리도록 욕을 먹는 한국 영화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한국인으로서 웬만한 한국 영화는 숱하게 봐왔고, 또 영화 산업 강국의 국민으로서 미국의 대자본 상업 영화 역시 숱하게 관람했으니,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의 진행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승리호 같은 영화가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준 한국 영화의 기술력은 할리우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것이었고, 이와 더불어 비록 뻔하지만 흥미를 끄는 거대한 스케일의 스토리, 많은 외국인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등의 요소들은 해외 시청자들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췄고, 이 뻔함 속에서 해외 시청자들은 한국 영화만의 스타일, 한국의 정서라는 참신한 것을 보다 쉽게 맛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개봉 당시 승리호를 보며 해외에서는 반응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글을 쓰며 유튜브나 여러 뉴스, 로튼토마토 등의 반응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그 평가가 한국인 이용자가 주를 이루는 왓챠와 비교해 확연히 갈리는 중이었다.

해외에서 호평이든 어떻든, 영화가 뻔하다는 것은 단점일 수밖에 없다. 군용 로봇으로 만들어져 강하고 투박하지만 실은 그 안에 여성성이 깃들어 있는 업동이는, 영화 ‘전우치(2009)’의 초롱이를 떠올리게 하는데, 심지어 두 역할의 배우는 모두 유해진으로 같다. 배경이 전부 다른, 연고 없고 유대도 없는 인물들이 팀을 이루는 설정은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2014)’가 생각나고, 비정상적으로 어른스러운 어린이가 험악한 어른들 틈에서 소통의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모습은 ‘7번방의 선물(2013)’과 꼭 닮았다. 이 외에도 황폐화된 지구, 유전자 기술, 적당히 위협적이고 적당히 포스 있는 악역, 태호와 같이 몰락한 엘리트 출신의 이기적인 괴짜 캐릭터 등은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등에서 이미 너무도 많이 등장한 설정이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작품 끝까지 여성성을 전혀 내비치치 않는, 술을 달고 사는 능글맞고 터프한 여성 장 선장의 캐릭터가 그나마 참신했다. 이처럼 승리호는 모든 장면들이 어디서 본 적 있는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를 제작하며 창의를 위해서는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모양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스케일이 큰 장면들, 우주선 전투나 액션씬 등의 장면은 무난히 할리우드의 수준을 따라잡았으나, 몇몇 소소한 장면에서는 대충 찍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부족한 디테일이 눈에 띄었다. 검은 여우단 단원들에 대한 취급이 대표적으로, 공장 인부들로 위장했었기에 입고 있었던 인부 유니폼을 극에서 퇴장하기까지 계속 걸치고 있고, 집단의 정체성은 적외선 후레쉬로 비추면 드러나는 여우 문신 단 하나로 표현된다. 개개인의 서사라고 할 만한 것도 없어서 항상 카메라는 단체로 그들을 잡아주고, 여러모로 신경쓰지 않은 연출이 그들을 오합지졸로 보이게 만들었다. 제작진도 이를 의식하고는 있었는지, 그들이 총에 맞아 죽을 때는 핏자국도, 옷에 구멍도,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아 일부러 극에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가벼운 소모품 정도로 관객들이 여기길 바라는 듯 보였다. 이상하게 이들이 등장할 때면 저예산으로 저 퀄리티의 영상을 매주 찍어내는 TV프로그램 ‘서프라이즈’가 생각났다. 이들에게 조금의 서사라도 부여해주었다면 다르게 비쳐졌을 터인데 말이다. 꽃님이의 초반 행적도 사실 설정 구멍이라고 할 수 있다. 꽃님이는 로봇이 아니었고 평범한 여자아이이다. 망가진 우주선 안에서 발견되어 얌전하고 태연했던 꽃님이의 행동은 처음에 로봇이라고 설명되었기에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엇지만, 후에 밝혀지는 정보와 초반의 꽃님이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는 명백한 연출 미스였다. 이처럼 영화는 이야기의 전개를 완성시키기 위해 세세한 디테일들은 애써 무시하며, 큰 틀만 어찌저찌 유지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승리호는 기존에 있던 익숙한 것들을 끌어다 만든, 심지어 디테일도 부족한 영화였지만 그 익숙한 것들을 잘 결합하여 그럴 듯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것이 동서양의 결합이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구성 속에 돋보이는 한국식 신파와 유머 코드, 모성애를 자극하는 아이와의 유대, 때로는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는 조금은 유치한 감성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할리우드를 뛰어넘는 세련됨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한국의 뻔한 영화가 할리우드 수준의 화려함을 얻었다는 것이 해외 관객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에게야 뻔하디 뻔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참신했을 수도 있었던 영화, 승리호이다.